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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ual Talk

마음일기 - 훈련소 편

 

Day 0 - 걱정:

기쁨과 환희가 가득해야 할 크리스마스

난 이발소에서 삭발을 했다

머리카락과 함께

걱정도 전부 날려버리고자 했지만

 

그 뿌리가 남아

자꾸만 솟아오르려고 한다

 

 

Day 1 - 막막함:

막막함 그 자체를 겪었다

시간이 멈춘것만 같다

과연 끝이 존재하기는 하는 건가?

 

 

Day 2 - 시계:

멈춰만 있던 시계가

조금씩 움직인다

 

이 시계가 돌아가는 동안

세상에서의 나는 멈춰 있다

 

시간은 공평하다

괴로워도 힘들어도

언젠간 이 시계 또한 마감될 것이다

 

 

Day 5 - 익숙함:

생각보다 동작이 먼저 반응하기 시작했다

무언가에 집중하는 최고의 방법은

그것 외의 생각을 지우는 것이다

 

슬프게도 무언가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무언가를 잊어간다는 것이다

 

잊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

그만큼 이곳에 익숙해지는 지금이

조금은 두렵기도 하다

 

 

Day 6 - 새해:

새해가 밝았다

나이를 먹은건가?

 

조용하게 소리없이

20대의 마지막 한해가 찾아왔다

 

남은 1년

후회없이 지나가기를

 

 

Day 7 - 악몽:

악몽을 꿨다

누군가에게 버려지고

차가운 겨울에 홀로 선 듯

서러움이 밀려온다

 

눈을 떠보니 꿈이었다

하지만 현실이 어째 더 막막하다

그 꿈이 현실이 되지 않았으면

지금 이 현실이 꿈이었으면 좋겠다

 

 

Day 9 - 희몽:

좋은 꿈을 꿨다

자기 전에 사소한 보람이

좋은 꿈으로 이어졌나보다

 

눈을 떠보니 꿈이었다

생각해보니 현실도 살만은 하다

살아내고 싶다

포기하지 말자

 

꿈이든 현실이든

생각하는 대로 되는 법이다 

 

 

Day 13 - 사소한 것:

같은 곡도

조금 더 눈물나고

 

말 한마디

노래 한 소절

이 모든게 가뭄의 단비처럼 느껴진다

 

간절함이란 것은

사소한 것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게 한다

간절함 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지만

 

간절함마저 없다면

그 무엇도 감사하지 않게 되는 법이다

 

 

Day 16 - 꽃:

사막에도 꽃은 피듯이

삭막한 곳에서도 웃음꽃은 핀다

그 무엇 하나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도

 

가끔은

사람 사는 향기가 난다

 

 

Day 18 - 어려운 길:

생각해보면 늘 그랬다

난 자의로든 타의로든

결국 어려운 길을 갔다

 

쉬운 길에서는 늘 무너졌고

어려운 길은 끝내 걸어냈다

 

항상 시련의 끝자락에

뒤늦게 깨달았지만

 

이번 만큼은

이 모든 나에게 벌어지는 일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음을

미리 고백하고 싶다

 

 

Day 19 - 보고싶다:

많은 것들이

많이많이 보고싶다

 

그 중에는 다시 볼 것도

다시 보지 못할 것도 있을 것이다

 

보던 모습 그대로인 것도

더이상 그 모습이 아닌 것도 있을 것이다

 

만에 하나

다시 보지 못할 모습들이 존재한다면

그 마음만큼은 간직하며

힌결같이 남아준 것들을

그 몫만큼 더욱 사랑해주고 싶다

 

 

Day 22 - 사람 일은 모르는 것:

9년 전에 배워둔 걸

이렇게 쓰게 될 줄은 몰랐다

 

당시에 이게 이렇게 쓰일 줄 몰랐음에도

최선을 다했음에 감사하다

 

모든 것이

당장에 도움이 되고

당장 성과를 보는 건 아니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다

 

지금 이순간

내가 근근히 붙드는 것들이

나중엔 내 삶에서

소중한 순간을 허락할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이 의미없어 보이고

힘들기만 할 지라도

나중의 일은 모르는 것

절대로 쉽게 포기하지 말자

 

 

Day 23 - 믿음:

사람은 믿은 만큼의 성과를 낸다

아무리 좋은 능력을 가져도

반만 믿으면 반을 하고

전부를 믿으면 그 이상을 한다

 

무언가를 믿기로 작정했다면

제한 없이 끝까지 믿어보자

 

스스로도 놀랄 만큼의 결과가

나의 걱정을 무색하게 할 만큼의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Day 27 - 무력감:

살다보면

무력하다는 감정을 느낄 때가 있다

 

분명 난 할 수 있는 것이 많은데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물론 사람의 가치는

지금 이 순간만이 결정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 나는

소중한 사람들, 소중한 일들을 위해

할 수 있는것이 아무것도 없다

 

초라하고 슬프고

이순간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처럼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아닌 나의 현재를 막론하고

나의 미래를 기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스스로의 가치를

당장의 모습만으로 단정짓지 말자

 

 

Day 28 -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린다

태어나서 본 것 중 가장 많이

눈이 내린다

 

나의 걱정과 부담 만큼이나

어깨위로 눈이 쌓인다

치워도 치워도 쌓이고

안치워도 언젠가는 녹지만

 

소중한 것들을 향하는 길 하나쯤은

언제든 마음이 향할수 있도록

깨끗히 치워두고 싶을 뿐이다

 

 

Day 29 - 아름다움:

눈내린 이 경치가 아름답다

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이는 모습이 아름답다

 

이 길을 걷자니

춥고 시리고

조금은 서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 모든게 무색할 만큼

아름답다

 

시간이 지나

모든 감정들은 잊혀질 지라도

 

이 아름다움 만큼은

잊혀지지 않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Day 31 - 시작과 끝:

처음엔 할만할 것 같았다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가 된다

끝까지 가기가 죽을만큼 힘들다

 

하지만 도중에 포기하기엔

스스로에게 배신감을 느낄것 같다

 

악물고 버티고

눈물을 머금고 나아가니

어느새 반환점을 돌았다

 

그동안 한 만큼만 더 하자

지금까지 한 것이 아까워서라도 끝까지 가자

여러 생각을 하며 포기만큼은 지웠다

 

급기야 끝이 보이고

스스로를 믿지 못할 뻔했던 자신에게

한마디를 건넨다

 

정말, 정말 수고했다고

이 순간만큼은 속으로 마음껏 울고

스스로를 믿어준 성과를

충분히 만끽하라고

 

 

Day 34 - 옳은 선택:

목표가 저멀리 보일지 않을 지라도

우리가 그곳을 본 적이 없더라도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음은

 

그 곳이 맞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기 때문이다

 

어째서 믿을수 있냐고 묻겠지만

그건 그 결과를 확신해서가 아니라

 

상황이 어떻게 되든

그 선택이 옳은 선택이 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Day 35 - 걱정, 또 걱정:

한 걱정이 끝나면

새로운 걱정이 생긴다

 

걱정은 치워도 치워도 쌓이는 눈처럼

결코 깔끔히 덜어낼 수 없다

따스한 햇살이 오면

언젠가는 녹아버릴 운명이지만

 

우리는 어째서인지

그것을 고이 모아 한 구석에

예쁘게 모셔둔다

 

그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깔끔해진 앞길을 보며

아름다웠던 풍경 만을 추억하지 않을까?

 

꼭, 그랬으면 좋겠다

 

 

Day 36 - 애착:

무언가와의 만남은 내 마음대로 하는게 아니지만

애착은 키워가는 것이다

 

만남은 우연일지라도

그것을 지켜내는 것은 노력이고

그것에 애착을 가지는 것은

운명 따위가 결정하는 게 아닌

우리의 생각과 마음 그리고

노력의 결실이다

 

지금 내가 가진 것에 애착을 못 느끼는가?

그렇다면 그건 그것 자체의 문제가 아닌

내 마음가짐의 문제일 것이다

 

애착을 잃지 않도록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Day 38 - 끝? 시작:

보이지 않던 끝이 보인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라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

나에겐 기뻐해도 될 자격이 있다

 

부디 시간이 지나서

진정한 끝을 맞이할 때에도

후회가 아닌

기쁨으로 모든 것을 돌아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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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1달 남짓의 훈련소 생활을 마쳤습니다. 고작 이등병을 달고 뭐 이리 할말이 많냐 싶을수도 있으시겠지만, 훈련소에서 하루하루 적어둔 글들을 모아서 나름 마음속으로 결론을 내려보고 싶었습니다.

 

훈련소에서 가장 많이 겪었던 감정은 무력함입니다. 아무리 날고 기던 사람들도, 결국 아무것도 할수 없는 상황에 놓이면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의심하며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도 스스로를 많이 돌아보게 된 시간 같습니다. 때로는 내가 아무런 가치가 없게도 느껴지고, 때로는 그 누구에게도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다는 것에 마음이 힘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결국 내 노력과 상관없이 남을 것은 남고, 떠날 것은 떠난다는 것을 어느정도는 납득하게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군복무 중에 제가 딱히 뭘 해드릴수는 없습니다. 있다면 편지 혹은 기도쯤이 되겠고, 그 이상은 제 능력 범위를 벗어나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만날 때에도 저를 한결같게 맞이해 주실 분들이 계신다면, 저도 한결같은, 혹은 그 이상의 모습이 되어서 다시 찾아뵙고자 합니다. 

 

그리고 다시 만날 때는, 과거보다도 더욱 감사하며, 함께 좋은 추억을 쌓고자 합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