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asual Talk

추억팔이


오랜만에 그러고 싶은 기분이라 추억팔이 한번 해보렵니다.

시간은 역순입니다.


2017년 12월

전부 다 기한이 만료된 여권들이랍니다. 10년짜리 여권을 만드는게 꿈이라며 글도 적었죠 아마? 그 글을 마지막으로 입대를 했네요. 아직 그 꿈의 종착역이 까마득하긴 해요. 사진 속 2014년부터 2017년을 책임져준 여권 6권은 아직도 내 서랍에 잘 간직되고 있답니다. 예나 지금이나 추억이 담긴 물건은 잘 못버리는 습관이 있네요. 더이상 나에겐 의미없는 물건일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2017년 11월

몇년만에 첫눈을 봤어요. 장미 위에 쌓인 눈은 기적을 꿈꾸게 하더군요. 결국 저 장미도 시들고 없어졌겠지만, 결코 저 마지막 저항이 의미없지는 않았어요. 내가 오래오래 기억할껀데, 내 마음속에서 평생 살텐데, 의미가 없을리가요?


환상의 끝, 현실의 시작, 그 경계에 있던 중 걱정 근심이 몰려와 답답한 마음으로 한강으로 산책을 나간 적도 있었어요. 지금 돌아보면 그때 걱정들 정말 다 그대로 현실이 되었더라고요. 하하...


2017년 10월

오랜만에 미친듯이 무언가를 해본 시기네요. 최선을 다해도, 내 실력과 노력과는 상관없이 결정되는 일도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건 얼마 뒤였지만, 그래도 무언가에 몰두하고 최선을 다할 수 있어서 그 시간들이 조금이나마 덜 아깝게 느껴졌어요. 그때 그 시간들, 언젠가는 나에게 선물을 줄 날이 오겠죠?


2017년 9월

벌써 떠나온지도 8개월정도가 지났네요. 그곳에 여러분, 다들 잘 지내시는거 맞죠? 요즘 그립네요. 좀 많이.


9월 1일, 출근 마지막 날, 정리를 시작하기 전, 50개월을 지냈던 사무실 책상의 마지막 모습. 

아는 만큼 보인다고, 사진 안에 추억거리가 셀수없이 많네요. 하하...


2017년 8월

이곳을 8월에만 2번 간 기억이 나요. 그것도 무려 1주일 사이에. 몇년동안 가자고 가자고 말만 하다가 한번도 못갔는데, 마음만 먹으니 일주일에 두번도 가더라고요.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여기서 시작되었어요.

대학에 처음 왔을때 가장 재밌게 놀았던 곳도, 떠나기 전에 "하고싶은거 다 하고 가자"라고 마음먹었을때 가장 먼저 떠오른 곳도, 지금 나에게 "어느 추억이 가장 강하게 남느냐"라고 물어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도.


2017년 6월


6월의 대만은 비와의 싸움이였어요. 여권이 쓸모없어지기 전 마지막 여행이였건만, 비가 너무 와서 계획대로 흘러간 일이 하나도 없어서 좀 아쉬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나름 좋은 여행이 되었던 건, 함께한 친구가 그럼에도 기뻐 보였기 때문에.

계획이 중요한건, 다 같이 기분 좋자고 중요한것 아니겠나요? 기분만 좋을 수 있다면 계획같은거 버려도 좋아요.


2017년 4월

최악의 시기

생각해보니 올해 4월처럼, 1년 전에도 이때가 최악이였네요.


기분이 최악이니까, 자신이 가장 하고싶은 것을 해보자! 라고 생각해서 여행을 떠났어요.

태어나서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대나무숲. 막상 가보니까 별거 없더라고요.

근데 여행은 최고였답니다. 정작 내가 가장 원했던건 별로였는데, 그 과정에서 마주친 다른 것들은 전부 최고의 추억이 되었더라고요.

그래서 감사해요. 이 숲을 가보고 싶지 않았다면, 그 다른 것들을 만날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원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좋던 나쁘던,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답니다.


2016년 11월

(점점 시간이 빠르게 당겨집니다...?)

Mount Kinabalu, Kundasang Memorial

처음 자발적으로 기획해서 가게 된 여행입니다.

저때 열 40도까지 올라서 해열제 먹고 버텼는데, 사진으로는 전혀 그렇게 안보이네요? 여행 자체는 최악이였는데, 지금 돌아보니까 또 추억이더라고요. 추억이라고 해서 다 돌아가고 싶은건 아니지만 말이죠...


2016년 5월

인생 첫 공모전 입상 사진을 찍은게, 벌써 2년 전 일이더라고요. 몇달 전에 이 사진에 대한 잡지 인터뷰에도 초청받고, 전시회에 전시 요청도 받았는데, 입대해 있는 사람의 무력함이란... 진짜 운명을 탓하기 싫어도 탓하게 되더군요.

뭐... 이 사진을 찍게 된 것도 운명이니 그냥저냥 퉁쳐야겠죠?


2014년 11월

2010 vs 2014라고 찍었던 사진인데, 세월이 지나서 다시 올줄 몰랐던 곳을 4년 뒤에 다시 오게 된 감격스러움이란... 말로 형용하기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똑같은 사진을 한장 더 찍어봤는데, 과연 2014 뒤에도 저기를 다시 갈 일이 있을까요? 그걸 모르니까 인생이 재밌다고들 하죠. 하하...


2013년 7월

끝,


그리고

시작.


이미 이 또한 끝이 났지만, 아무것도 없던 이곳이, 50개월 뒤 가득해질 상상을 하니, 힘들때 중도하자하지 않았던 게 너무나도 다행스럽게 여겨집니다.


2013년 5월

5년 전이네요. 이 사진이 없었다면, 난 사진과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 거에요.

대학 생활의 끝을 고하는, 대만으로 떠난 졸업여행, 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사진을 찍었어요. 보기 싫은 것이 있어서, 시야를 의도적으로 좁히기 위해 사진을 찍었어요. 근데 좁혀서 봐야만 보이는 것이 있고, 그래야만 찍히는 사진이 있더라고요.

행운으로 얻어걸린 사진 한장이, 나의 취미인생을 바꿔놓았던 만큼, 행운섞인 성공 한번이, 우리의 자신감과 의지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알것 같더라고요.

다시한번 그날 새벽에 눈비비고 나간 자신에게 감사합니다.


2012년 2월

이때만해도 큐브가 내 인생의 큰 주축이였어요. 최고가 되어야겠다는 열정으로 가득했을 때...

한국으로 이사할때 눈물을 머금고 저 트로피들을 다 버렸는데, 조금 아쉽긴 하지만, 지나간 사랑은 지나간 대로 정리해줄 필요가 있더라고요. 아주 가끔씩, 큐브를 꺼내며 좋았던 때를 추억하긴 한답니다. 전과 같은 뜨거운 열정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시 손에 쥘 때면 왜 좋아했는지 알것 같더라고요.

다만 더 중요하고, 좋아하는 일들이 생겨서, 어쩔수 없이 순위 뒤로 밀려났을 뿐, 아직도 참 좋아요. 상황만 허락한다면 다시 시작하고 싶을 만큼.


2011년 11월

시험을 볼때면 A4용지 하나를 찾아서 컨닝노트를 만들곤 했어요. 시험 규정상 A4지 한장의 컨닝노트가 허락되었거든요. 사실 쓰다보면 느끼는게, 다 쓰고 나면 굳이 노트를 찾을 필요가 없긴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확실히 글로써 적힌 약속을 갈망하죠. 어째 그런 약속이 있어야만 내것으로 붙들어둘 수 있을것만 같아서.


2011년 6월

책을 사기엔 돈이 쪼달려서, 어딘가에서 구한 E북을 매달 무료 인쇄 할당량으로 조금씩 출력해서 책으로 만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어떻게든 책을 책답게 보고 싶었던 마음이 이리도 컸던 시절이 있었나봐요.


2010년 11월

없는 돈 모아서 노트북 하나 샀답니다. 제 학교 인생 3년을 책임져준 고마운 녀석이네요. 이상한 주인 만나서 시도때도 없이 포맷하고 다시 깔고 혹사만 당했는데, 그 때의 투철한 실험정신을 온 몸으로 받아준 이녀석이 참 고맙습니다. 그게 지금은 다 자산이 되었으니까요.


2010년 8월

우빈섬에 대한 좋은 추억 중 대표적인 게 이거였어요. 그러고보니 이때도 8월이네요?

이것 말고 2009년에 갔던 것도 한번 있었는데 도무지 사진을 찾을수가 없네요. 때로는 잃어버리게 되는 추억도 있기 마련이겠죠? 그래도 하나 둘쯤 희미해졌다고 이 곳에 대한 좋은 기억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한번 좋았던 것은 계속 좋은 경우가 더 많더라고요!


2010년 1월

센토사섬에 대한 첫 추억까지는 아니지만, 대학생때의 센토사와 첫 추억은 이거였어요. 하루이틀 지나면 밀물에 쓸려 없어질 것을 만들며 하루종일 재밌게 놀았는데, 무너질 모래성이면 어때요! 쌓을 때 기분좋으면 그만이지.

모든 성과가 다 평생 갈 것이여야만 그 과정이 행복한건 아니더라고요! 때로는 즐거운 과정이 성과를 제외하고도 충분히 나에게 행복 그 이상의 것을 준답니다. 그 때를 곱씹을때 흐뭇한 미소가 나오는걸 봐서는, 그 때의 노력이 헛된것은 아니였던 게 확실해요. 비록 모래성은 이미 흔적없이 사라졌을지라도.


2009년 10월

살기도 바빴던 때, 만원짜리 교향악단 콘서트티켓 하나 사들고 콘서트장에 가기 위해 도심으로 처음 나와봤어요. 이곳이 지금은 너무 흔하고 익숙해 보이는 곳이지만, 그 익숙하던 곳도 이렇게 설레고 풋풋했던, 그래서 화질따위 신경쓰지 않고 그저 꼭 사진을 남기고 싶었던, 그런 시절이 있었죠.

그날 콘서트 끝나고 새벽 2시까지 길잃고 헤메던 기억도 문득 떠오르네요. 역시 또 한번, 아는 만큼 보이나봐요. 하하...


2009년 7월

사진은 그 시절의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남아있는 사진이 더이상 없어서 이쯤에서 마무리하려고 했답니다. :)

2009년 7월, 싱가폴에 처음 갔을 때, 창밖을 볼 때 처음 만난 풍경이 딱 이런 모습이였어요. 낯선 풍경, 낯선 길, 낯선 차들이 나란히 서있는데 머릿속이 하얗게 되면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앞으로 이 낯선 곳에서, 살아갈 날들이 막막해 보여서 말이죠.

지금은 저 풍경이, 그리워서 눈물이 나요.

내년이 찾아오고, 내가 다시 저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 때가 되면, 그 창밖을 볼 때로부터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겠네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이라면 고등학생 시절인데, 돌아보면 10년 정말 금방 지나더라고요.

그 마음을 다시 한번 상기하고 싶어서 이 글을 적었어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힘든 나에게, 힘내라는 선물 하나 주고 싶어서요. 나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치이고 다쳐도 스스로 재생하는 힘 아니겠냐고 하며.

그동안 10년, 정말 열심히 살았지만, 그리고 그 열심에 대한 보상을 조금 더 미뤄야 하겠지만, 그래도 앞으로 1년 반도 안남은 군생활, 조금만 더 힘내보자고요.

인생이라는 큰 그림에서 볼 때면, 이 2년쯤은 점 하나에 불과하지 않겠냐 싶어서.

그 점 하나때문에, 내 큰 그림을 그르치기엔, 지난 10년이 너무 아깝지 않겠냐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