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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ual Talk

여행 못가서 여행 다시가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일본 여행기 - Prologue

입대 1년차를 맞이했던 어느 12월 겨울. 그날, 휴가를 출발하자 마자 폭설이 쏟아졌다. 군인이 제일 싫어하는게 눈이라지만, 휴가를 출발할때 내리는 눈은 그래도 아름답다. 다시 한번 휴가를 오늘 출발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9,100원. 만원이 조금 안되는 고속버스 표를 사들고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를 기다릴 때도, 버스를 타고 나서도, 함박눈이 그칠 생각을 안한다. 오늘 여전히 부대 안에 있었으면 어떤 고생을 했을지 떠올라 잠깐 숙연해졌다가 또 피식 웃는다. 오늘은 참 좋은 날이다.

집으로 향하는 고속버스에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오늘은 참 좋은 날이다. 그렇게 좋은 날 답게 자신이 가장 하고싶었던 것을 생각해 보았다. 군인이 가장 갈망하는 자유를 선물받고 싶지만, 아직 나는 그 자유까지 한참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문득 "그럼 자유를 얻고난 자신을 위해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듬해 9월 어느날, 부랴부랴 배낭을 싸들고 공항에 왔다. 내 인생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가장 잘 표현한 장소를 하나 꼽으라면 난 주저하지 않고 공항을 꼽을 것이다. 이로부터 1년 뒤, 전 세계 공항이 폐쇄에 가까운 사태를 맞이할지는 당연히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 결정은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 난 군대라는 속박을 떠나, 하늘을 날아 새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14박 15일 여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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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을 기획하게 된 것은 나의 생일이기도 했던, 함박눈이 내리던 그날 문득 어딘가로 빨리 날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전역하고 다시 직장에 가면 아마도 당분간 장기간의 여행은 꿈도 꾸기 어려울 터, 난 최소 10일 이상의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군 적금이 사실 그리 넉넉한 돈은 아니라서, 숙박과 여행 경비를 어찌어찌 계획해보니 약 15일정도의 일정을 기획할수가 있었다. 물론 아침은 편의점, 숙박은 게스트하우스라는 제약이 붙었지만, 난 최대한 오랜 시간을 떠나고 싶었기에 그렇게 정했다. 

그리고 행선지를 정하던 도중 나의 눈에 들어온 풍경이 있었으니:

사진은 나중에 직접 방문해서 찍은 사진


이로부터 약 2년 전, 나는 교토 근방에 있는 대나무숲 사진 한장을 보고 무려 출발 3주전에 비행기표를 사서 교토로 떠난 전적이 있는데, 이번엔 저 꽃밭을 보고야 말겠다는 생각으로 행선지를 홋카이도로 정했다. 그렇게 이것저것 계획하다보니 교토도 다시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결국 일본을 세로로 반 이상 가로지르는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여행을 기획하게 되었다. 이동이 많은건 여행의 금기라는걸 알지만 난 그래도 최대한 많이 움직이고 싶었다. 지난 2년간 그 어디도 움직이지 못한 설움을, 절대 무시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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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난 삿포로에 도착했다. 

삿포로에 대한 인상은 원래 홋카이도의 중심 지역 정도였지만, 사실 삿포로에 대한 유명한 글이 있다: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 이병률
멍을 덮으러 열을 식히러 삿포로에 갈까요.

쏟아지는 눈밭을 보며 술을 마실까요.
우리가 선명해지기 위해서라기보다 모호해지기 위해서라도
삿포로가 딱이네요.

삿포로에 갈까요?
이말은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군대에서 저 산문집을 접하고, 삿포로를 가고 싶은 마음이 한층 커졌다. 삿포로에서 거리를 누비며 낭만을 만끽하는 하루, 조용히 길가에 앉아서 거리가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 하루를 기대한다. 그렇게 나의 14박 15일, 잊지 못할 일본여행은 시작되었다.

 

마지막으로, 본편으로 들어가기 전 삿포로 감성 보너스 클립:

 

타국에서 여유롭게 거리에 앉아서 버스킹 듣을수 있는 날이 어서 다시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