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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ual Talk

Ep 3 - 고집 (여행 못가서 여행 다시가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일본 여행기)

토미타 팜으로 향하는 길, 원래라면 차를 타는게 정상이지만, 난 천천히 걸어서 목적지까지 향했다

비가오던 하루 다음 날, 화창한 하루가 나를 반겨주었다. 원래대로라면 후라노 부근의 다양한 스팟들을 돌아보기로 일정이 되어있었지만, 비가 오던 어제 하루가 너무나도 아쉬워서 난 조금은 고집스럽게도 모든 일정을 포기하고 다시 비에이로 갈 마음을 먹었다. 물론 하루종일 비에이에 갔던 것은 아니고, 일단 오전에는 볼거리가 어느정도 보장된 토미타 팜에 가게 되었다. 

메론향과 라벤더향이 섞인 아이스크림

토미타 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건 라벤더 아이스크림이다. 보기에 예뻐야 먹기도 맛있다고 하는데, 이 색감을 보면 솔직히 맛이 그냥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다를게 없다고 하더라도 맛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는 라벤더향과 멜론향이 첨가된 아이스크림이였는데, 꽃의 색감을 감상하면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니 맛이 배로 좋아진 것 같았다. 물론 멜론향이 실제로도 참 마음에 들었다.

원래라면 라벤더가 무성했어야 할 꽃밭, 조금 늦은 여름에 가서 그런지 이미 라벤더는 보이지 않았다


한가지 참 아쉬웠던 것은, 라벤더는 이미 계절이 지나서 중간중간에 꽃밭이 비어있는 곳들이 보인다는 것이였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 더 늦은 계절까지 피는 꽃들이 있었기에 좋은 볼거리는 충분했다. 

그렇게 토미타 팜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난 다시 비에이로 왔다. 만약 홋카이도에서 단 한군데를 방문해야 한다면 난 비에이를 추천할 것 같다. 너무 한산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복잡하지도 않은, 그러면서 여러가지 아름다움 풍경들이 고작 자전거 한대로 전부 방문 가능하다는 점이 너무나도 좋았다.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여기에서 하루를 묵었다면 참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다시 찾아간 자전거 가게에서 나는 다시 한번 전동자전거를 빌렸다. 자전거가게 아저씨가 나를 알아보는듯 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렇게 난 다시한번 멋진 풍경을 찾아 도로로 나갔다. 오늘은 비가 오지 않아 좋은 일이 참 많이 일어날 것 같았다.

사계채의 언덕 (Shikisai no Oka)

후라노/비에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경치를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이렇게 다닥다닥 붙어있는 꽃밭의 풍경일 것이다. 그 외에도 너무나도 예쁜 풍경들이 많았지만 이건 사진보다는 직접 그 사이로 달려야지만 그 웅장함을 마음에 담을 수 있다. 사진이 표현 할 수 있는 것은 한 장면 뿐이지만, 이런 장면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속에서 바람을 가르며 질주하는 것은 그 어떤 경험과도 바꿀 수 없는 진귀한 경험이었다. 물론 어제처럼 비를 가르며 달리는 것도 참 진귀한 (어쩌면 더 진귀한) 경험이지만, 그래도 난 오늘 이곳을 다시 방문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이 지역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다시 삿포로를 향하는 열차를 탔다. 자전거를 타면서 나를 스쳐지나갔던 풍경들이 더 빠른 속도로 나를 지나가더니 어느새 나는 정신을 잃고 잠이 들었다. 눈을 뜨고 보니 어느새 도심 근처의 풍경이 보였다. 좋은 것은 느긋하게 천천히 보아야 한다. 내 인생에 더 충분한 여유가 있는 날이 온다면, 자전거가 아니라 걸어서 이곳을 누비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충 지나가는 열차 속에서 찍었던 사진. 구석구석이 전부 아름다워서 꼭 다시 와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인생에서는 참 많은 좋은 일들이 고작 기회를 만나지 못했다는 이유로 우리를 빗겨간다. 딱 한번만 더 힘을 내어 2번째 기회를 허락한다면, 더 많은 좋은 일들이 우리 인생에 허락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한번에 잘 되지 않았다고 너무 쉽게 포기하지 말고, 딱 한번의 기회를 더 주는것은 어떨까? 비오는 날의 비에이가 내 인생에서 비에이에 대한 마지막 인상이 되었다면, 참 아쉬울것 같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내가 피웠던 소소한 고집이 참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