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오던 하루 다음 날, 화창한 하루가 나를 반겨주었다. 원래대로라면 후라노 부근의 다양한 스팟들을 돌아보기로 일정이 되어있었지만, 비가 오던 어제 하루가 너무나도 아쉬워서 난 조금은 고집스럽게도 모든 일정을 포기하고 다시 비에이로 갈 마음을 먹었다. 물론 하루종일 비에이에 갔던 것은 아니고, 일단 오전에는 볼거리가 어느정도 보장된 토미타 팜에 가게 되었다.
토미타 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건 라벤더 아이스크림이다. 보기에 예뻐야 먹기도 맛있다고 하는데, 이 색감을 보면 솔직히 맛이 그냥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다를게 없다고 하더라도 맛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는 라벤더향과 멜론향이 첨가된 아이스크림이였는데, 꽃의 색감을 감상하면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니 맛이 배로 좋아진 것 같았다. 물론 멜론향이 실제로도 참 마음에 들었다.
한가지 참 아쉬웠던 것은, 라벤더는 이미 계절이 지나서 중간중간에 꽃밭이 비어있는 곳들이 보인다는 것이였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 더 늦은 계절까지 피는 꽃들이 있었기에 좋은 볼거리는 충분했다.
그렇게 토미타 팜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난 다시 비에이로 왔다. 만약 홋카이도에서 단 한군데를 방문해야 한다면 난 비에이를 추천할 것 같다. 너무 한산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복잡하지도 않은, 그러면서 여러가지 아름다움 풍경들이 고작 자전거 한대로 전부 방문 가능하다는 점이 너무나도 좋았다.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여기에서 하루를 묵었다면 참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다시 찾아간 자전거 가게에서 나는 다시 한번 전동자전거를 빌렸다. 자전거가게 아저씨가 나를 알아보는듯 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렇게 난 다시한번 멋진 풍경을 찾아 도로로 나갔다. 오늘은 비가 오지 않아 좋은 일이 참 많이 일어날 것 같았다.
후라노/비에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경치를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이렇게 다닥다닥 붙어있는 꽃밭의 풍경일 것이다. 그 외에도 너무나도 예쁜 풍경들이 많았지만 이건 사진보다는 직접 그 사이로 달려야지만 그 웅장함을 마음에 담을 수 있다. 사진이 표현 할 수 있는 것은 한 장면 뿐이지만, 이런 장면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속에서 바람을 가르며 질주하는 것은 그 어떤 경험과도 바꿀 수 없는 진귀한 경험이었다. 물론 어제처럼 비를 가르며 달리는 것도 참 진귀한 (어쩌면 더 진귀한) 경험이지만, 그래도 난 오늘 이곳을 다시 방문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이 지역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다시 삿포로를 향하는 열차를 탔다. 자전거를 타면서 나를 스쳐지나갔던 풍경들이 더 빠른 속도로 나를 지나가더니 어느새 나는 정신을 잃고 잠이 들었다. 눈을 뜨고 보니 어느새 도심 근처의 풍경이 보였다. 좋은 것은 느긋하게 천천히 보아야 한다. 내 인생에 더 충분한 여유가 있는 날이 온다면, 자전거가 아니라 걸어서 이곳을 누비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인생에서는 참 많은 좋은 일들이 고작 기회를 만나지 못했다는 이유로 우리를 빗겨간다. 딱 한번만 더 힘을 내어 2번째 기회를 허락한다면, 더 많은 좋은 일들이 우리 인생에 허락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한번에 잘 되지 않았다고 너무 쉽게 포기하지 말고, 딱 한번의 기회를 더 주는것은 어떨까? 비오는 날의 비에이가 내 인생에서 비에이에 대한 마지막 인상이 되었다면, 참 아쉬울것 같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내가 피웠던 소소한 고집이 참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