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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ual Talk

Ep 4 - 스쳐갈 정도의 인연 (여행 못가서 여행 다시가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일본 여행기)

홋카이도 섬의 끝자락을 아주 잘 보여주는 하코다테 전경

홋카이도 중부지역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도쿄로 내려갈 채비를 하기 위해 하코다테를 찾았다. 하코다테는 홋카이도 최남단에 위치한 곳인데, 혼슈(일본의 메인섬)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신칸센 열차를 타야했기 때문에 이곳에서 하루정도 일정을 잡았다. 이곳은 일본 3대 야경중 하나라는 하코다테산 야경이 있는 곳인데, 그곳은 꼭 가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은걸 제외하고는 딱히 달리 정한 행선지가 없었다. 사실 아예 정해둔 행선지가 없었던건 아닌데, 어지간한 열차가 배차간격이 30분에서 1시간이라 열차시간에 얽매이느니 느긋하게 여기저기 목적없이 돌아다녀도 좋을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코다테산에서 내려다본 하코다테의 야경. 일본 3대 야경이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하다.

하코다테산에서 내려다본 야경은 예상대로 정말 멋졌다. 사람이 정말 많아서 제대로 된 사진을 찍기 어렵다는 점만 제외하면 정말 좋았다. 홋카이도 가장자리의 특이한 해안선이 야경으로써의 독특한 멋을 한층 더해주었다. 야경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하코다테산은 사람이 많지 않은 날을 알 수만 있다면 꼭 다시 오기를 바라는 곳 중에 하나다. 

오른쪽이 럭키 삐에로. 왼쪽은 별볼일없는 편의점 같아 보이지만 무려 꼬치구이 맛집이다.

하코다테의 먹거리 명물은 의외로 "럭키 삐에로" 라는 햄버거 집이다. 이 햄버거집은 하코다테에만 있는 프랜차이즈인데, 수제버거와 패스트푸드 사이의 무언가를 보는듯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상당히 독특하고 맛도 나쁘지 않아서 이곳에 온다면 꼭 한번쯤 시도해볼만한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에 와서 무슨 버거를 먹냐고 할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왔다면 한번쯤 먹어볼 정도의 퀄리티는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 옆에 있는 편의점은 편의점에서 꼬치구이 장사를 하다가 대박이 난 곳이라고 하는데, 편의점 간판을 달고 있지만 들어가면 점포의 한 절반정도 면적은 꼬치를 굽는 장사를 하고 있다. 기왕 왔으니까 호텔에 돌아가서 먹을 야식 정도는 사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것도 몇개 사가기로 했다. 편의점에서 맥주도 함께 구매할수 있어서 이건 참 편리했던 것 같다.

럭키 삐에로 버거셋트. 메뉴 명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꽤 괜찮았던 것 같다
꼬치구이. 짭짤하니 맥주와 함께 먹기 딱 적당한 맛이었다.

그나저나 하코다테는 생각만큼 교통이 좋지는 않아서 도보로 이동하는 경우가 참 많았는데, 조용한 거리에서 걷다보면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부터 떨어져서 방방곳곳 누비고 다니는 자유함, 다만 혼자라는 미묘한 쓸쓸함이라는 두가지 감정이 뒤섞였지만 그래도 나는 참 기뻤던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군대에서 갓 나온 사람에게 자유란 그 무엇도 바꿀수 없는 최고의 가치이자 기쁨이다. 

항구 근저 거리. 조용하게 바다바람을 맞으며 걷기 좋은 곳이었다.

그렇게 짧지만 인상깊었던 하코다테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다음날 아침 도쿄행 신칸센을 타러 신하코다테 역으로 이동했다. 나는 기차여행을 참 좋아하는게, 기차를 타면 여러 아름다운 풍경들이 내 옆으로 스쳐 지나간다. 오래오래 머물지 않고 순간 보였다가 그대로 멀어져 버린다. 하지만 어느새 또 더 멋진 풍경들이 나를 기다린다. 인생에는 짧지만 강렬한 만남이 참 많다. 하코다테는 나에게 메인 방문지로 자리잡지 못했던, 그저 들렀다 가는 휴게소 정도의 곳이였지만 분명 기억에 남는 곳이었고, 우리가 조금 더 인연이 깊었다면 더 깊은 사이가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는 법. 도쿄로 향하는 신칸센이 온다.

인생은 결과론이지만, 그래도 난 결론이 곧 가치의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코다테를 애초에 쉬어가는 장소처럼 생각하지 않았다면, 하루라도 더 오래 묵을 장소로 정했었다면, 조금 더 열정을 가지고 이곳저곳 돌아볼 일정을 정해봤다면, 나의 일본 여행기의 감상은, 그리고 하코다테라는 곳에 대한 감상은, 지금과 달리 정말 강렬하게 남았을 지도 모른다.

스쳐지나가는 인연도 분명 존재한다. 다만 절대로 무언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스쳐지나간 것은 그냥 때와 시기가 맞지 않았을 뿐, 무엇이 더 낫고 덜하고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에게 가장 아쉬웠던, 여운이 길게 남은 장소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하코다테를 꼽을 것이다. 내 일본 여행중 최고의 장소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함께할 수 있었음에 그에 준하는 가치와 감사함을 표한다.

이 여행에 다시 한번이 있다면, 이곳이 메인이 되는 결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